새들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눈에 비친 첫 모습이 평생 머릿 속에 각인된다고 한다. 인공부화로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자신의 탄생을 지켜본 사육자를 기억하며, 나중에 야생으로 돌아간 뒤에도 자전거 타고가는 사육자 머리 위를 떼지어 날고, 자전거가 멈추면 일제히 땅에 내려 앉는 광경을 ‘동물의 세계’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하게 유․소년기에 본 인상적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 깊이 남아 있음을 나는 어떤 경험으로 알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초여름, D시에서 전학해 온 한 소녀가 있었다. 음악시간인데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다잡으려고 느닷없이 “지순아, 너 노래하나 불러볼래?”하셨다.
최지순―그녀는 참 참한 소녀였다. 이마를 약간 덮는 듯한 단발머리에 톡 튀어나온 이마. 거기서부터 미간을 지나 잠시 낮게 흐르는 선(線). 그 선은 높지 않으면서도 아슬아슬한 곳에서 오똑하게 선 콧날에 이르러 딱 멈췄고, 눈은 약간 깊게 파였으며 가느다라서 아래로 내려 뜨면 거의 일자로 감긴 듯했고 속눈썹이 유난히 길었다. 요즘 말로 좀 이국적(異國的)인 느낌이 드는 소녀였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데, 선생님께서 오르간 반주를 시작하셨고 소녀는 무릎을 살짝 살짝 굽히며 고개를 좌로 까딱 우로 까딱 하면서 “들에 핀 진달래, 한 송이 꺽어”를 참 맛깔스럽게 불렀다. 그 뒷 구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 와 꽃병에 꽂았더니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빠․엄마가 참 좋아하셨죠”―대강 이런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소녀가 노래를 하는 동안, 이마 위로 살짝 흐트러져 내린 단발 머리칼이 살랑거렸고, 하얀 바탕에 진남색 두 줄 무늬가 새겨진 넓은 세모꼴 목깃은 리듬을 타고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아, 저런 애하고 살아봤으면’―어린 나이에 나는 순간적으로 황당한 상상을 했다.
그 후 소녀는 그 해 겨울방학이 끝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오빠를 따라 D시로 도로 전학을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3학년 초여름. 모내기하는 농번기가 되어 농가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대략 20명씩 팀을 짜서 일해줄 농가를 배당받고 상급생 인솔하에 나가는 것이었다. 아이들 웅성거리는 소리로는 그 중에 지순의 집이 끼어 있었다. 우리 집은 그 쪽 동네와는 정반대 쪽이고 멀었지만 나는 지순의 집 모내기 팀에 끼겠다고 손을 들었다. 어쩌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모내기하는 동안에 저고리와 바지는 무논 흙탕물이 튀어 영 말이 아니었고, 몇 번이나 종아리에 붙은 징그러운 거머리를 놀라 떼어 내면서, 자꾸 떠오르려는 모를 힘주어 꾸욱꾸욱 눌러 심었다.
어느덧 해가 우리들 머리 위에까지 떠오를 때 볶은 밀 같은 간식도 배급되었고 점심도 나왔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논 어귀에서도 논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가 “야, 밀 속에 잇빨 나왔다”하는 엉터리 외침에 모두들 까르러 웃어대면서 그렇게 모내기는 싱겁게 끝났다.
나도 그 후 D시의 K중학교에 합격이 되어 당시 고등학생이던 사촌형과 하숙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다. 사촌형은 종종 자기의 초등학교 후배가 한 사람 있는데, 내가 입학한 중학교에 다녔고 금년에 막 졸업했다면서 언제 한번 그 집에 갈 때 같이 가보자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사촌형은 그 후 건강관계로 낙향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며, 나는 그 집에 갈 기회가 없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사촌형이 그 집에서 빌려 왔다는 책 한 권이 방 윗목에 그대로 놓여 있음을 알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사촌형이 말하던 기억을 더듬어 어렵게 그 집을 찾았다. 그 선배도 지순이도 함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그날따라 두 사람 모두 출타하고 방문은 잠겨 있었다. 마루가 길게 이어진 일본식 목조주택이었는데, 두어 세대가 같이 사는 것 같았다. “한참 있으면 올 거야. 좀 기다리지”하는 옆집 아주머니에게 책을 맡기고는 그냥 나왔다. 불순한(?) 마음을 품고 찾아 갔던 탓인지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어색해져 더 있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중학교․고등학교도 다 마치고 시골에 내려가 잠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에 진학했고 어떤 부잣집에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집에서 부엌 일하는 한 40대 아주머니가 하루는 자기의 친정 일가 중에 참한 처녀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결혼했는지 모르겠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문득 꺼냈다. 지난 번 친정에 들렀더니 ○○군청 공무원하는 면소재지 부잣집 총각과 혼삿말이 있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면 ○○리’―이렇게 이야기의 초점이 점점 좁혀져 가면서 나는 그것이 ‘지순이구나’하는 생각이 이내 들었지만, 더 알려고 캐묻지는 않았다.
그러고 한 반년쯤 지났을까. 겨울 어느 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골 고향 가는 버스를 타고 있는데, 회색 모직코트를 걸치고 운치있는 고데에다 끝자락 부분에서 약간 리드미컬하게 퍼머를 하여 전체적으로 좀 풍성한 느낌이 들게 머리를 잘 단장한 젊은 여인이 차표를 들고 서둘러 들어왔다. 이게 웬일일까. 바로 내 자리로 향했고, 1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그녀가 지순임을 담박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통성명을 했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나를 안다고 했다. 그녀가 전학 후, 한참 지나 그녀와 성(姓)이 같은 또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와서 졸업 때까지 함께 공부했었는데, 지순이는 그 학생과는 멀지 않는 일가여서 그를 통해 잠깐 동안 함께 지낸 옛 급우들이지만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순이는 시집에 행사가 있어서 다니러 간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무슨 말을 더 주고 받고 했는지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내 맘속에 오랫동안 각인된 내밀한 사연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물론 그런 말을 늘어놓을 계제도 아니었지만).
버스는 비포장 도로를 근 두 시간 가까이 달렸으며, 우리는 더 이상 말이 없이 졸거나 창밖을 내다보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난방이 안되는 차였지만 서로의 체온이 합쳐지고 그것이 지순의 모직코트로 잘 보온되어 따스하고 포근했으며,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향수냄새 크림냄새도 감미로웠다.
드디어 버스는 지순의 시댁이 있다는 면 소재지 정류소에 잠시 멈춰 그녀를 내려 놓았고, 나는 그곳으로부터 십여리 더 간 종점에서 내렸다.
“할렐루야, 하느님은 거룩하시고 참으로 자애로우시도다. 평생 같이 살게는 안 하셨지만, 두 시간을 함께 있게 해주셨으니…”